백남준과 선(禪), 샤먼(Shaman)

변호사 김백영

필자는 최근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회고전(Paik Nam June, Paik Name June and Paik Name June 2024.11.30.-2025.3.16.)에 두 차례 다녀온 것을 계기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간단한 관람기를 남기고자 한다.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은 1932년 서울에서 부잣집의 도련님으로 출생하였고, 초등학교 시절에 누나의 피아노 교습을 어깨너머로 보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고, 경기중학교 시절에 음악교사 이건우(1874-1951)로부터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의 음악세계를 배웠다. 중학교(필자주, 당시는 6년제) 재학 중 부친의 인삼사업을 도우기 위하여 홍콩으로 갔다가 한국전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대학에서 음악과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1956년 독일로 유학을 갔다.1)

백남준은 1958년 9월에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의 공연을 보고 자신이 갖고 있던 음악에 대한 환상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다.2) 존 케이지는 소음을 비롯한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무정형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존 케이지는 1958년 피아노 앞에서 건반 뚜껑을 닫고 4분 33초간 앉아 있다가 연주가 끝났다고 인사한 4.33이 유명하다. 백남준은 이 순간을 회상하면서 “마치 모래를 씹는 것 같았다.”고 최고의 찬사를 보였다.3)

또한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1959.11.13. 첫 공연작품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 헌정하였고, 존 케이지가 돌아갔을 때 다음과 같은 추모글을 남겼다.4) 케이지는 완전히 악마로 돌변해 정원에 모래를 던지듯 청중의 머리에 음들을 던졌다. 장식적인 효과나 오락, 완성미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케이지의 기질이 바로 내가 가장 감탄하는 부분이다. 그의 수많은 제자와 젊은 친구들은 케이지의 세례를 받고 나서 더 선별적이며 미학적으로 변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유독 케이지만이 너절한 것들을 뱉어낼 용기와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백남준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란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케이지는 Cage(새장)이므로 나무에 TV 모니터 형태의 새장을 매단 작품으로 나무(자연)과 TV 모니터(기술) 과의 공존과 상생을 모색하고 있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와의 운명적 만남과 교류를 통하여 그의 예술세계를 통째로 바꾸었다. 백남준은 그를 정신적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런 운명적 만남은 어부 베드로 형제가 예수를 만나서 인간을 낚는 어부가 되었고, 자로가 공자를 만나서 건달에서 의인이 되었고, 나무꾼 혜능이 금강경을 읽는 사람을 통하여 5조 홍인의 거소를 알고 곧장 5조 홍인을 찾아가 6조가 되었고, 사냥꾼 석공 혜장은 마조도일(709-788) 선사를 만난 후 화살을 꺾고 출가하여 도인이 되었고, 화전민 해월이 동학 교조 수운을 만나 천도를 알고 2대 교주가 되었고(1960~), 하급 철도공무원 김성수가 함석헌을 만난 후 영국 유학길에 올라 함석헌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함석헌 평전을 썼고, 게이오 대한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해에 다니구치 요시오(1937-2024)가 부친의 친구로부터 건축 전공을 권유받자 곧장 하버드 건축대학원으로 유학을 마친 후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모두 운명적 만남을 포착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자신의 존재 양식을 바꾸었다. 평범한 인간은 운명적 만남을 만나기도 어렵고, 설령 만나더라도 그냥 지나쳐버린다.

백남준은 미국의 액션 페인팅 작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액션 뮤직(Action Music)이라는 퍼포먼스를 시작하였는데, 이번 전시에서 바이올린을 줄에 매달아 거리로 끌고 다니는 <걸음을 위한 선>, 몇 분간 천천히 바이올린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갑자기 내려쳐 부수어 버리는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독주>와 이마와 머리에 먹물을 잔뜩 묻힌 후 기다란 백지에 선을 그어 내리는 <머리를 위한 참선>을 볼 수 있다.

<걸음을 위한 선>
<머리를 위한 참선>

백남준은 1963년 3월 독일의 부퍼탈(Wuppertal)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통하여 비디오 아트의 탄생을 알렸다. 전시회 개막 전 도살장에서 가져온 황소머리를 갤러리 현관 중앙에 걸어두어 사람들에게 충격요법을 통하여 관객들의 인식을 하나로 만들어 보고자 하였고, 지역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5) 백남준은 독일에서 플럭서스(Fluxus) 행위 예술가로 이름을 날렸다. 플럭서스란 1963년 독일에서 처음 일어나고 형성된 국제적인 전위예술가 집단을 이르는 말이다.6)

백남준은 1963년 일본으로 돌아와서 비디오아트를 개척하면서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TV 수리법, TV 회로도를 독학으로 독파하고,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조작해 화면의 색깔과 형태를 변환시키는 기술을 습득했다. 백남준은 이후 로봇까지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번 부산 현대미술관 전시에서도 많은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백남준은 1974년 뉴욕에서 TV 모니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 속에 비친 모습을 보는 부처인 설치미술을 <TV 부처>를 선보였다. 평론가들은 동양의 선(禪)과 서양의 테크놀로지가 만나 기념비적인 비디오아트가 탄생하였다고 평하였다.7)

이번 전시에 나온 <TV부처>이다. 이것은 자신의 내면을 바로 보는 것으로 이때 모니터는 단순한 거울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외모만을 추구하는 셀카의 유행으로 그치고 있다.

<TV부처>

백남준은 전위예술가 구보타 시게코(久保田 成子, 1937-2015)와 1977.3.21. 결혼했다. 백남준은 1979년 다음과 같이 예언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었다.8) “비디오디스크가 인쇄되지 않은 뉴욕타임스나 슈피겔 출판사의 모든 작품을 저장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 공공도서관의 책을 모두 소장할 수 있고 쉬면서 마음대로 어느 곳이나 펼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77년 당시 이미 컴퓨터 기술이 우리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예측해냈고, 이것은 그가 첨단 기술과 기계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독서광으로 동양의 고전은 물론이고, 경제 서적까지 폭넓었고, 일어, 중국어, 독어,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하였다. 백남준은 1977년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어 “10년간의 독일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부터 생활이 나아져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백남준은 1993년 동쪽 끝자락 대표로서 서쪽 끝자락의 대표인 미국인 한스 하케(Hans Haacke, 1936~)와 함께 독일의 대표 작가로 선발되어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된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모토는 “예술의 네 개의 뱅의, 서양과 동양, 남과 북, 혹은 현대적 유목민으로서 예술가”였다. 이때 야외공원에 <마르코 폴로>, <알렌산더로스>, <캐서린 대제>, <징기즈칸의 복권>, <스키타이 왕 단군> 등이 전시되었고, 이들은 역사의 개척자이거나 지배자이다.

<징기즈칸의 복권>

백남준은 1977년 한 기고문에서 “나는 왜 극단성에 만심을 보냈을까? 나의 몽골 유전자 때문이다. 몽골 선사시대에 우랄 알타이 쪽의 사냥꾼들은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 한국, 네팔, 라플란트까지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고 남겼다.9) 백남준은 세계를 호령한 징키스칸과 같은 몽골족이라는 자부심과 단군을 이들과 같은 반열에 놓았다.

또 독일관에 전 세계가 전자 고속도로(필자주, 오늘날 인터넷)로 연결될 것이라는 예언자적 작품 <전자 초고속도로>와 <시스틴 채플>, 달이 차고 기우는 영상을 보여주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놓았다. 전시 제목은 <일레트로닉 슈퍼 하이웨이-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였다. 백남준은 이 전시에서 황금 사자 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에 인류의 달에 관한 정서, 아울러 제행 무상을 보여주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 그밖에 한국인의 정서를 잘 나타내는 <TV 토끼>, <TV 촛불>을 보여주고 있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
<TV 토끼>
<TV 촛불>

백남준은 1984.1.1.을 맞이하여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영감을 받아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전 세계 생중계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백남준은 이제 한국 정부도 거부할 수 없는 국제적 존재가 되어 1987.6. 김포공항을 통하여 금의환향하였다.

한국 정부도 88올림픽을 앞두고 문화, 인권 등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일 상황이었다. 그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TV 1003개로 <다다익선>을 만들어 1988.10.3. 개천절에 맞추어 공개했다. 1990년 <요셉 보이스 추모굿>을 통하여 백남준은 한국 무속에서 큰 영감을 얻어 굿판을 벌이기도 하였다. 스스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기도 하였다.10) “한국의 무속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소통이야.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지.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되고, 면은 오브제가 되고, 결국 오브제가 세상이 되는 게 아니겠어?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한국의 무속은 따지고 보면 세상의 시작인 셈이지.”

백남준은 1994년 뉴욕 휘트니뮤지엄 백남준과 강익중 2인전을 초대받아 그의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이와 같이 뛰어난 예술과 백남준은 한국인 DNA를 가졌으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해외로 떠도는 노마드 생활을 하면서 서양적 식생활을 한 까닭에 몸에 무리가 갔을 것이고, 고혈압, 당뇨병을 얻어서 1996.4.9.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나 재활 훈련을 거쳐 2000년 구겐하임 뮤지엄의 <백남준의 세계>를 성황리에 마무리 했다. 특히 레이저 작품 <야곱의 사다리>가 환상적이다.

백남준은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위하여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푼 만찬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다가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를 하기 위하여 일어서면서 바지가 내려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계 언론은 백남준을 배려하여 이 장면을 찍어서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이를 두고 빌 클린턴의 성 스캔들을 풍자한 퍼포먼스라는 견해가 있으나, 부인 구보라 시게코에 의하면 그날 속옷도 입지 않고 멜빵도 허리띠도 하지 않아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하나, 본인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는 2006.1.25. 한밤 중 죽은 친구들과 꿈속에서 만난 뒤 2006.1.29. 저녁에 시게코가 요리한 장어덮밥을 맛있게 먹고 난 후, 조용히 저 세계로 귀환하였다. 2006.2.3. 열린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옆 사람의 넥타이를 잘라서 관에 넣어주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화장된 그의 유골은 2006.7.17. 서울 삼성동 봉은사로 모셔져 49재가 봉행되었다.

<벽암록 제18칙과 제37칙 족자>

필자가 이번 전시에서 백남준이 직접 쓴 벽암록 제18칙과 제37칙 족자와 해설표지를 보고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안내문에 의하면 백남준은 도쿄대학 시절 도쿄인근 가마쿠라(鎌倉)에 살면서 신불교를 깊이 공부했고, 일 유학시절 친구들에게 선문답을 가르칠 정도였다고 한다. 벽암록 제18칙의 본칙(本則)은 이러하다.

숙종 : 스님이 돌아가신 후 무엇을 해드릴까요.

혜충 : 무봉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십시오.

숙종 : 탑의 모양을 말씀해주십시오.

혜충 : (한참 침묵하다가) 알겠습니까?

숙종 : 모르겠습니다.(不識)

혜충 : 저의 제자 탐원이 이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조서를 내려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숙종 : (혜충이 입적한 후 탐원에게) 무봉탑이 무엇입니까?

탐원 : 상주의 남쪽, 담주의 북쪽입니다.

문답은 벽암록 제1칙 (달마불식, 달마는 알지 못한다)에서

양무제 : 그대는 누구인가?

달마 : 모르겠습니다.

문답의 거꾸로 버전이다.

여기서 독자에게 묻겠습니다. 무봉탑이 무엇입니까? 어느 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찾을 것인가? 만약 마음을 찾을 번개치는 찰라에 계합한다면 즉시 백남준을 만날 것입니다.

벽암록 제37칙의 송(頌)은 이러하다.

三界無法(삼계무법) 何處求心(하처구심)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디에서 마음을 찾을까?

白雲爲蓋(백운위개) 流泉作琴(유천작금)
흰 구름은 일산이요, 흐르는 물소리는 비파소리라.

一曲兩曲無人會(일곡양곡무인회)
한 두 곡조도 아는 이 없나니,

雨過夜塘秋水深(우과야당추수심)
비 개인 밤 못엔 가을 물이 깊다.  

There is nothing in the triple world; Where can mind be found?
The white clouds form a canopy; The flowing spring makes a lute—One tune, two tunes;
No one understands.
When the rain has passed, the autumn water is deep in the evening pond.

끝으로 한 마리 소회를 남긴다. 백남준은 위대한 선 마스터(Zen Master)이자 대무당(Shaman>이다. 그는 선 마스터로서 거침이 없었고, 창조적이었고, 뒤돌아보지 않았고, 대무당으로서 공연에 들어가면 신명이 내려 눈이 뒤집혀져 전혀 딴 사람이 되어 무위로 나아갔다.

그에 관한 많은 다큐가 전시장에서 요일별로 상영되고 있으나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2023>를 추천한다.

필자는 2023년 시카고 극장에서 본 바 있다. 가까운 울산시립미술관은 <시스틴 채플, 1993>, <거북, 1993>을 소장하고 있다. 경기 용인에 경기도립미술관으로 백남준 아트센터가 2008년 문을 열었고, 2024.10.19.부터 2025.3.23.까지 <달에 사는 토끼: 시간의 거울 속 백남준 예술>이 전시되고 있다.


각주

  1.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 p55-59
  2. 수잔네 레너르트 「백남준과 미디어아트, 그 시작」 p22
  3.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 p60, 이 표현은 칭찬을 하는 선(禪)적인 표현이다.
  4.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 p60
  5.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 p67-68
  6. 수잔네 레너르트 「백남준과 미디어아트, 그 시작」 p40
  7.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 p63
  8.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 p203
  9.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 p236
  10.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