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분쟁과 화쟁

2. 분쟁과 화쟁 < 김백영의 불교 속 법률 산책>

화, 가해자이자 피해자 되는 원인

두 부족 물 분쟁 해결 출발은
욕심보다 화부터 다스리기
삼국통일 초석도 원효 ‘화쟁’
사법부도 소송보다 조정 우선

불전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의 고향 카필라의 동쪽에 로히니강이 있고, 강 동쪽에 콜리야족이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여름 가뭄이 들어 물 부족 상황이 되자 두 나라 사이에서 강물 사용을 두고 농민들 간에 다툼이 생겼고, 이는 집단 폭력으로 이어졌다. 두 나라에서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군대를 출동시켰고, 결국 전쟁으로 비화될 처지에 놓였다.

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로히니 강가로 가서 두 나라의 농민과 관계자들을 만나 법문을 설하고 화해와 조정을 이끌어 내어 두 나라 농민이 공정하게 강물을 이용해 가뭄을 극복하도록 하였다. 분쟁 원인은 조그마한 욕심에서 비롯돼 화를 내고 결국 싸움으로까지 번진 것이었다.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과도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지만, 우선은 화를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법구경’ ‘분노품’에는 “성냄을 능히 자제하기를 마치 달리는 수레를 멈추듯 하면 분노를 잘 제어하는 것이 되어 어두움을 버리고 밝음으로 들어가리라”고 설하고 있다. 또 ‘잡아함경’에서는 “두 번째 화살에 맞지 마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두 번째 화살’이란, 처음 느낀 화가 폭발해 욕설이나 거친 행동 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목가적인 농경사회를 벗어나 전투적 산업사회, 나아가 정보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화(火)’를 달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이 화가 해소되지 않고 응어리로 남으면 스스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나아가 화가 덩어리져 집단적 분노로 이어지면 편을 가르고 상대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원효 스님은 대승과 소승, 선(禪)과 교(敎), 공(空)과 성(性)·상(相) 등의 이견(異見)과 이론(異論)을 융섭의 논리로 화회(和會)·회통(會通)시켰다. 이를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이라고 한다. 화쟁사상은 양극단을 떠나 중도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효의 화쟁사상은 분열된 삼국이 신라로 통일되는 과정에서 갈등하는 사람들과 사회를 일심으로 회통시키는 데 정치적 역할도 했을 것이다.

부처님이 로히니강의 물 분쟁 사건에 개입해 사회 현안을 평화적으로 해결한 것은 ‘참여불교’의 전범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불교 역시 부처님의 중도 사상과 원효의 화쟁사상을 바탕으로 편 가르기식 비방이 아닌 평화적이고 생산적이며 진취적인 방식으로 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또한, 상생 방안을 제시하여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오늘날 국가는 법치주의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원로들이 분쟁을 중재하였으나, 익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조그마한 사건도 법적 대응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고소·고발과 재판은 자칫 삶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비록 재판으로 가더라도,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은 3심제를 택하고 있으며, 갈등을 완화하고 상생을 도모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법상 화해, 민사조정법과 가사소송법상 조정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 화해나 조정이 성립되면 그 자체로 분쟁이 일단락되므로 마음의 앙금이 덜 남고, 지속되는 소송으로 인한 비용 지출을 막을 수 있으며, 정신적 스트레스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따라서 법원에서도 이를 적극 권장하며, 대도시 법원에는 조정센터를 두고 있다. 또한, 조정 신청 시 일반 소송 청구 인지대의 1/10만 납부하도록 하여 소송보다는 조정 신청을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