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탐방

변호사 김백영

1. 도서관의 탄생

필자는 요 몇 년간 건축물 투어를 하다 보니 특히 도서관이 눈에 들어와서 이에 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종래의 도서관이란 책을 보관하고 열람이나 대출에 응하는 건축공간을 말한다. 이용자에 따라 특수도서관, 일반도서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민혁명 이전까지는 특수계층을 위한 장서관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오늘날에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이 중요성을 차지하게 되었다.

세계 최초의 도서관은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제국(BC2450 – BC609)에서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한 도서를 보관한 니네베 왕궁의 도서관이고 점토판 35,000 장을 보유하고 있었다.1) 그 후 바빌로니아제국은 아시리아제국을 정복하면서 점토판 도서관을 파괴하고 그들의 역사 정보를 파피루스와 양피지로 대체하여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원정을 하면서 이집트를 정복하고 BC332년에 이집트에 알렉산더리아 도시와 도서관을 건설하던 중 사망하고, 그의 뒤를 이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알렉산더리아 도서관을 완공했다.2) 그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으로 오로지 권력층을 위한 도서관이었으나 641년(?) 이슬람에게 함락되면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3) 유네스코등의 지원으로 2001년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이 이루어졌다.4) 설계한 건축가는 노르웨이회사이고 이 회사는 부산의 북항에 오페라하우스 설계를 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중국에는 일찍이 왕실 장서관이 있었다. 이이(李耳)로 불리는 노자(BC571?-BC471?)는 주나라 수장실(왕실 장서관)의 사서 (도서관장)였다.5)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과 사마천은 태사령 (사관)이란 직책을 수행하였다.

사마천은 역사기록물을 보관하는 왕실 장서관의 자료도 열람하였을 것이고, 부친의 유언에 따라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역사서 저술을 하기 위하여 중원을 여행하고 각종 자료를 수집한 후에 사기 집필에 들어갔다가 명장 이광의 손자 이릉을 변호한 사건으로 황제 기만죄로 처벌을 받게 되면서 그 당시 통례에 해당되는 자결을 택하지 않고 궁형을 자처하고 치욕을 감내한 채 역사서 완성이란 소명 감에 일생을 바친 끝에 太史公書<태사공서, 통칭 사기>을 완성하였다. 당시 사마천의 고뇌는 그가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보임소경(報任少卿)에 잘 드러나 있다.6) 루쉰(魯迅)은 사기를 가리켜 ‘역사학자의 절창이요. 운율 없는 이소(離騷)이다’ 라고 평하였다.7)

궁형을 내린 한무제 유철은 시호가 무제(武帝)에서 보듯이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졌거나 폭군으로 기억되지만 사마천은 사기를 통하여 동서양을 통틀어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결국 문이 무를 이긴 역사적 사건이다. 중국에서는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 죽간이나 비단에 글을 썼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정보를 가진 자는 권력자이고 정보는 문서나 책으로 수집보관하고 유통을 통제하였다. 왕은 최대의 권력자이므로 중요하거나 희귀한 도서를 수집하고 관리하였으며 귀족들도 희귀 정보에 접근해서 얻은 정보나 도서를 필사하여 보관하는 서재를 갖고 있었다. 종교단체나 성직자는 그들의 교리를 보존하고 연구한 성과를 문서로 만들어서 보관하는 장서각을 가지고 엄격히 관리하였다. 대표적으로 카톨릭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도서관도 뒤따르게 되고 동양에도 불교 사찰과 유교서원에 장경각을 두고 장서를 관리하였다.

움베르트 에코(1932-2016)의 소설을 보면 어느 수도원 도서관에 소장된 유일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시학 제2권>은 금서로 지정되어 있는데, 허가 없이 읽은 자들의 발설을 막기 위하여 책에 독극물을 발라놓았고 이를 모른 채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면서 서서히 중독이 되어 죽도록 장치를 해놓았다. 이로 인하여 발생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도서관은 미로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정보의 유통이 폐쇄적이라는 상징이고 이 소설에서 시학 제2권을 지키는 호르헤 수도사는 장님이다. 이것은 세상 변화에 눈감고 있는 자란 상징이다.

이 소설은 정보를 관리보관하는 자가 체제에 위협이 되는 도서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탄압하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중세에 교황청은 엄청난 도서를 금서목록으로 지정하고 이에 위배되는 사상가를 종교재판에 넘겼다. 유명한 부루노(1548-1600) 와 1633년 갈릴레오(1564-1642) 재판을 들 수 있다. 이 소설의 모델이 된 수도원은 오스트리아의 멜크시가지 절벽 위에 지어진 멜크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에 있는 도서관에는 1,800 여권의 필사본과 10만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8)

<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르네상스를 태동시킨 유명한 도서관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메디치가문이 설립하고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메디체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은 2층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진리로 가는 문임을 상징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일반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고 메디치 가문의 권력유지에 기여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었으나 르네상스를 가져오는 길을 여는데 기여했다.

2. 대학도서관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서구에 대학이 설립되면서 학문연구에 필요한 도서관도 생겼다. 오늘날 대학도서관은 보관된 도서의 열람보다는 시험공부 장소로 더 이용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대학도서관으로 유명 한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구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채색기독교 복음서와 20만권의 고서를 비치하고 있고 관광객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참고로 직접 가볼 수 없는 분은 해운대 조선호텔 1층 베이커리 복도에 대형 사진이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취리히대학 법학도서관>은 천정을 타원형 투명재료로 만들고, 그 아래로 중정을 확보하여 빛과 개방감으로 공간을 만들고 2층에서 7층까지 타원형 개방형 열람대로 이루어져 있다. 스페인 건축가 산티에고 칼라트라바(Santiego Calatrava, 1951-)가 설계했다. 그는 인체와 조개 등 생물탐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취리히대학 법학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를 기념하여 만든 도쿄의 와세다 (早稲田) 대학의 <무라카미 도서관>은 학문추구에서 정직성을 상징하는 사각형 건물과 창조성으로 가고자 하는 사고의 유연성을 상징하는 곡선 철재의 입구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쿠마 겐고가 설계했다. 중국의 건축가 왕수(王樹, 1963-)는 2012년 중국 최초의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는데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관점에서 자연을 등지지 않으면서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쑤저우(蘇州)대학 문정(文正)도서관>을 설계하였다.

<쑤저우(蘇州)대학 문정(文正)도서관>

3. 공공도서관

프랑스 시민혁명 등으로 왕정이 무너지자 왕실도서관을 기반으로 해서 국가도서관 내지 공공도서관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1850년에 공공도서관법을 제정하고 공공도서관 보급에 나섰고, 영국의 스코틀랜드 출신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1884년 스코틀랜드 던펌리에 공공도서관을 기증하기 시작하여 영국과 미국 전역에 공공도서관 3,000곳 이상을 기증하였다.9) 공공도서관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1440년경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의 시작에 따른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양피지에 필사하고 채식한 도서는 고가로서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의 등장으로 저렴하게 책을 보급할 수 있게 되어 도서 유통의 대중화가 시작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권력자 독점의 정보체제가 무너지고 교육이 대중화되어 시민의 문해력이 높아지게 되자 공공도서관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한문 문화권에서는 서양의 ABC 소리글자와 달리 한문의 뜻글자의 한계, 한자 수만큼 주조에 따른 고비용 때문에 금속활자화가 상업화가 되지 못하고, 목판각을 하고 이것으로 찍어 한정된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하였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소리글자 한글을 창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속활자를 활용한 도서 발행과 유통에 이르지 못한 것은 조선왕조 체제가 유학과 농업에 기반한 사회 이다 보니 상업과 무역을 중시하지 않아 지식과 정보유통의 확대 기회를 놓침으로써 그 필요성을 못 느낀 데 따른 것으로 뼈아픈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공도서관으로 아름다운 건축물로 첫 번째로 미국 시애틀 (seattle) <중앙 도서관>은 만평 규모에 150만 권의 장서를 보 유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재산, 지위, 인종, 학력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개방되는 모두를 위한 도서관을 목표로 한다. 이 도서관을 설계한 렘콜하스는 큰 변화가 없을 정해진 공간으로 ① 주차장 ② 직원을 위한 공간 ③ 회의공간 ④ 책을 저장하는 공간 ⑤ 도서관본부, 앞으로 미래에 변화가 될 수 있는 공간으로는 ① 열람실 ② 복합공간 ③ 거실 ④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 구분하고 위 5개와 4개 공간을 서로 엇갈려놓은 컨셉으로 설정하였다.

미국 시애틀 (seattle) <중앙 도서관> 내부

도서관의 외관은 박스 위에 박스를 엇갈려 배치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중앙도서관은 건물의 바닥을 아주 넓게 만들어서 도시의 일부가 되도록 해서 사람들은 거대한 지붕 아래의 동일한 평면 바닥에 앉기도 하고 책을 찾아 읽기도 하지만 언제든지 다른 층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10)

미국 시애틀 (seattle) <중앙 도서관> 외관

근래에 지어지는 공공도서관은 종래의 대출과 독서 중심에서 벗어나서 시민들을 끌어들여 휴식과 놀이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지역관광객 유치까지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타입의 도서이용률이 떨어지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의존도가 심화되므로 필연적으로 종이책으로 구성된 도서관의 기능에 변모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도서관 건물의 아름다움, 수장고와 열람대 구분의 개방성, 어린이 놀이공간과 카페시설 등 부대시설의 수용, 엄숙주의의 포기를 가져왔다.

이시카와현(石川) 가나자와시(金沢)에 있는 <이시카와 현립도서관>은 필자가 본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2022년에 개관하였다. 건물의 외관은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연상시키고 내부는 원형 돔을 기준으로 4개 층이 뚫린 높이 15미터의 타원형 극장처럼 서가가 빙 둘러싸고 있다. 이 서가 사이사이에 500석의 좌석이 마련되어있다. 벽과 창문이 지그재그의 형상으로 반복되며 외벽을 감싸서 직사광을 막는 커다란 루버 형태이면서 채광과 개방감을 갖추고 있다. 출입구는 정면에 2곳, 후면에 1곳을 두어서 실용성과 개방성을 표방하여 시민의 접근성을 높이고 정면 좌측 내에 카페를 두어 도서관과 구획되면서도 일체감을 갖추어 또 다른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카페 뒤 공간에 어린이 전용 공간이 배치되어 젊은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배치를 하고 있다.

정말 가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은 도서관이다. 설계는 센다 미츠루로 전통적인 도서관 공간의 규칙을 깨는 새로운 형식을 담았다고 한다. 전통적인 도서관은 책보관고와 열람대가 분리된 정적이면서 구획된 폐쇄 공간의 형식이었다. 이러한 신선한 발상의 도서관으로 국내외에서 소문을 듣고 2022년 말에 53만 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시카와 현립도서관>

규슈의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역시 쇠퇴해가는 지방도시를 살리기 위한 문화재생 프로젝트 일환으로 파격적인 형식의 도서관을 2013년에 리뉴얼 개관하였다. 도서관 내에 도서진열대와 열람실과 구분 없이 커피도 팔고, 책도 파는 스타벅스를 내고 이것을 컨비니언스 클럽(CCC)에 위탁경영을 맡겼다.

소도시의 명물이 되어 이미 국내외에서 1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물론 공공도서관의 상업화 경향에 비판이 있지만 오늘날 종이책 정보가 점점 약화되는 경향에 비추어 접근성이 높아지면 독서율도 올라갈 것이다.

시코쿠(四國) 고치(高知)현 다카마츠(高松) 유스하라(檮原) 마을에 있는 <구름 위의 도서관>이 2017년에 개관되었다. 해발 1,455미터에 위치해서 구름 위의 도서관이란 명칭을 얻었다. 이 아름다운 도서관을 보려고 깡촌시골에 사람이 모여들고 힐링의 장소를 제공되고 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쿠마 겐고(隈研吾, 1954-)가 설계하였다.

<유스하라 초립도서관 (명칭 구름 위의 도서관)>

일본 사이타마현 <카도카와 무사시노(角川武蔵野) 뮤지엄>은 쿠마 겐고가 설계한 것으로 4층과 5층을 거대한 책장으로 꾸민 <책장 극장>이 유명하다. 과거의 책장에 현대식 레이저 빔을 쏘아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고, 20,000권의 도서를 구비 하여 방문자의 열람에 응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식당과 카페를 두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한국어 가이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역시 현재 일본의 국민적 건축가라 불리는 쿠마 겐고가 설계했다.

<카도카와 무사시노(角川武蔵野) 뮤지엄>
<카도카와 무사시노(角川武蔵野) 뮤지엄> <책장 극장>

중국 텐진(天津) <빈하이(滨海) 신구(新区) 도서관>은 2017 년에 개관하였고 약 10,000평 5층 규모 구성되어 있는데 설계는 네덜란드 MVRDV와 중국 내 TUPPI가 공동으로 했다. 도서관 1층에는 유아열람구역, 노인열람구역, 2층에는 아동열람구역과 학습관 3층에서 5층까지는 성인열람실이다. 특징은 천정에서 바닥까지 내려오는 120만 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계단식 책꽂이와 1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 역할을 하는 빛나는 구체를 중앙에 두고 있다. 이 도서관은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의 계단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의 계단

이들 공공도서관은 종래의 서고와 열람대의 분리, 엄숙성과 연구, 공부 중심의 조용한 분위기를 탈피하고 서고와 열람대의 통합, 카페, 어린이 놀이공간 등 부대시설 설치 등 자유로운 분위기의 힐링 장소로서 변모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 명지에 들어선 <국회부산도서관>도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시설되고 운용되고 있다. 1층에 어린이 놀이공간 겸 독서공간, 카페 겸 독서공간이 배치되어 있는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국회부산도서관>

서점 또한 종래는 단순히 도서를 파는 장소로 운영되다가 현장에서 도서도 읽고 커피나 간식을 먹고 잡담도 나누고 교제하는 힐링 장소 역할도 하는 것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다. 필자는 2025. 1. 27. 도쿄 긴자에 있는 <츠타야서점>을 방문하였는데,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고 바로 옆에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아니면 같은 층 식당에서 식사도 가능하였다.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 1970~)은 “모든 사람 에게 매력적으로 비춰질 건물을 디자인하고자 할 때 반드시 반복과 복잡성은 없어서는 안될 도구이다. 두 힘은 반대로 작용할지언정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둘의 미적 긴장이 균형을 이루는 그때 뭇 사람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이 가능해진다”고 한다.11) 아름다운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매력을 발산한다.

4. 바벨의 도서관

바벨은 구약 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건축물로 통칭 바벨탑으로 묘사되고 있고, 인간이 하늘에 도달하기 위하여 건축물 중앙에 탑을 쌓아가자12) 야훼가 노하여 일꾼들의 언어를 뒤섞어 놓아 공사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바벨은 혼란의 상징이자 교만의 상징이다.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 1986)는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에서 대부분을 보냈으며 정규교육은 받지 않았고 부친의 눈병 치료 유럽여행에 7년간 동참하였고, 그 후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으나 무슨 이유인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Pinochet, 1915-2006) 의 훈장을 받은 것 때문에 노벨상은 받지 못했다. 1937년 시립도서관 사서로 근무를 시작하였다가 패론정권의 박해로 1964년에 사직하였다. 패론정권 붕괴 후 박해를 받은 데 보상으로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하였다. 도서관장 취임 때 거의 시력 상실상태였으나 유전병으로 1958년 완전히 실명하였다. 20세기 지성사에 가장 박학다식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움베르트 에코는 보르헤스를 존경하여 <장미의 이름>에서 장님 수도사의 이름을 “호르헤”로 지었다.

보르헤스는 완전 실명 후에 장님인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와 <일리아드>를 남겼듯이 기억에 의지해서 29권으로 구성된 바벨의 도서관을 남겼다.13) 바벨(혼돈)이 극에 달한 세상에서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찾아 떠나려는 모든 항해자들의 든든한 등대이자 믿을만한 나침판으로 29권의 작품집을 선정하고 해제를 달았다. 그중에서 제3권에 수록된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하여 인간의 인식과 문학적 완벽함이 동시에 담겨있기 때문이다14) 라고 한다.

뜻있는 사람은 더 늦기 전에 이반 일리치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보르헤스나 이어령과 같은 석학이 죽으면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 사라진다.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 머릿속에 든 책을 훔쳐야만 했었다.

5. 맺는 말

중용 제20장에 의하면 공부를 함에 있어서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辯) 독행(篤行)을 제시하고 있다. 출발선이 박학이고 박학은 박람강기(博覽强記) 즉, 널리 읽고 깊게 기억하는 것이다. 박학은 체계적인 독서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의한 검색은 단편적인 지식인 데다가 검증 여부를 알 수가 없으므로 허위정보나 저급정보에 의하여 오독이 될 수 있으므로 텍스트에 의한 체계적인 독서가 필요하다.

앞으로 AI 시대가 도래하면 거짓 정보에 의하여 훈련된 AI가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갈수록 책과 멀어지면 AI가 인간을 조종하는 가공할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독서 부족으로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고 거짓 정보에 휘둘리는 상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철학자 한병철은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잃은 사회, 내 생각과 느낌을 말하지 못하고 입력한 정보를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회의 끝은 서사없는 텅빈 삶이 된다고15) 경고하고 있다. 일찍이 로마의 정치가 카게로(Cicero BC106-43)는 “정원과 서재가 있다면 원하는 전부를 가진 것이다”라고 하였다.16) 과거 선비는 농경시대이기는 하나 정원이 딸린 집과 서재를 갖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주거공간이 아파트로 변하여 정원과 서재가 없다면 그나마 가까운 야외 도서관에라도 자주 가는 것이 어떨지? 스테판 말라르메(St, Mallarme 1842 1898)는”세상은 한 권의 책을 위하여 존재한다”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어느 도서관에서 찾을 것인가?17)

오늘 아침 이런 글귀를 발견하였다.18)

“누군가가 건네준 책을 펼치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장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녹슨 창문이 반강제적으로 삐걱삐걱 열리며 바람이 들어오고 방 안이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그 충격은 때로 강풍이나 눈을 찌르는 빛이 되어 저를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각주

1) 엔드루페테그리 외1, 도서관의 역사, 2025, p27
2) 엔드루페테그리 외1, 도서관의 역사, 2025, p28
3) 남정욱, 기록으로 남아있는 이슬람 도서관, p33
4) 죽기전에 꼭 봐야할 세계건축 1001, p806
5) 사마천, 사기, 노장신한열전 참조
6) 장수철외1, 절창, p404
7) 장수철외1, 절창, p402
8) 죽기전에 꼭 봐야할 세계건축 1001, p211, 윤희욱, 세계꿈의 도서관 p78
9) 도서관의 역사 p417
10) 김광현,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p531
11) 토마스헤더윅, 더 인간적인 건축, p21
12) 大피테르브뢰헬, 바벨탑, 목판에 유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13) 바다출판사, 바벨의 도서관, 작품해제집(2012)
14)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3권(러시아와 그 미로의 구원) p15
15) 한병철, 서사의 위기, 다산초당
16) 박원순의 도시의 정원사, 조선일보, 2024. 11. 1.에서 재인용
17) 보르헤스(정경원 번역) 만리장성과 책들, p199
18) 아오키 미야코, 나는 숲속도서관의 사서입니다(2025. 3. 24.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