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훔치는 것과 경제적 민주주의

4. 훔치는 것과 경제적 민주주의  <김백영의 불교 속 법률 산책>

경제민주주의는 착취 막는 기본 질서

수행은 자비·정의 가치 실현
지금도 은밀한 도둑질 횡행
경제정의는 훔침 막는 울타리
불교 해법은 사고의 전환서

십중대계 중 둘째는 “훔치지 말라”이다. 여기서 ‘훔친다’는 행위는 단순히 남의 재물을 몰래 가져가는 것뿐 아니라, 타인의 정신, 신체, 노동력까지 몰래 또는 강제로 취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자연 세계를 보면, 세렝게티 초원에서 독수리는 사자가 사냥한 먹이를 훔치고, 하이에나는 무리를 지어 사자의 먹이를 빼앗는다. 사자 역시 표범이나 치타의 먹이를 탈취하고, 자칼은 하이에나와 사자의 싸움을 유도한 틈에 고기를 훔쳐 달아난다. 사바세계의 중생은 본능과 생존 본위의 이기심에 따라 끊임없이 남의 것을 탐한다. 이에 성인은 인간의 본성을 다스리고 바른 삶으로 인도하고자 세상에 출현한다.

수행이란 동물적 욕망에서 벗어나 자비와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삶의 방식이다. 오늘날 농경시대의 밤도둑은 사라졌지만, 다른 형태의 훔침은 더 교묘하고 조직적으로 일어난다. 타인의 무지나 약점을 이용해 속이고 착취하는 일이 흔하다.

예컨대 지적 능력이 낮은 사람이나 아동, 맹목적인 신도를 ‘보호’ ‘교육’ ‘포교’라는 명분으로 정신적 무기력 상태에 빠뜨리고 무임금 또는 저임금 노동을 시키며 과도한 헌금과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가 있다. 이는 명백한 도둑질이며 범죄다. ‘능엄경’에서는 “어떤 도둑들은 내 법복을 입고 여래를 팔며, 계율을 지키는 승려를 도리어 소승이라 비방하고, 한량없는 중생을 미혹하게 하니 무간지옥에 떨어질 죄업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며 말법시대 종교 지도자들의 폐해를 경고한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서 주인공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아미르에게 “도둑질은 가장 큰 죄다. 남을 속이면 남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바바 자신은 하인의 아내를 통해 아들 하산을 낳았고, 아미르는 하산을 시기해 거짓말로 그를 내쫓는다. 아버지의 죽음 후 아미르는 진실을 알고 “아버지가 내 알 권리를 훔쳤다”고 절규한다. 한때의 죄가 카르마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 헌법 제119조 2항은 “경제 주체 간 조화를 통해 경제 민주화를 실현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착취를 방지하는 국가의 기본적 책무다. 형법상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가면 절도죄, 위협해 빼앗으면 강도죄, 강간죄, 추행죄 등으로 처벌받는다. 아동 성착취물 소지는 별도의 법률로, 일반 형법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성범죄는 특례법으로 처벌한다.

특히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자신을 절대자로 포장해 신도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사이비 종교는 인격과 신체를 동시에 훔치는 가장 악질적인 도둑이다.

경제적 민주주의는 이런 착취를 방지하는 기본 질서다. 고용주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사업자는 상품과 서비스에 합리적이고 투명한 가격을 매겨야 한다. 불자는 정법에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정신, 재산, 신체를 지키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사찰 또한 세속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응용력을 갖추어야 한다.

농경시대에 맞춘 초하루·보름 법회는 이제 정기 토요·일요법회로 전환하고, 보다 깊이 있는 법문 연구로 불자의 안목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 시대를 맞아 불자 변호사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거래, 상속, 세금 등 생활법률 교육을 시행한다면, 신도들의 사회생활 역량을 높이고 공동체의 지혜를 확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보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