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법조] 2018. 7. 24. 변호사 김백영
대구미술관이 2011. 5. 26. 개관되었는데 산 아래에 시원스럽게 잘 지어졌다. 김환기 작품 전시가 2018. 5. 22.부터 2018. 8. 19.까지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회화 명품전이 2018. 6. 16.부터 2018. 9. 16.까지 열리고 있어서 최근 가족, 지인과 함께 다녀왔다.
서양화의 경우에 작품 속에 제목을 적지 아니하나 작가의 메모 등을 가지고 작품 제목을 안내하기도 한다. 동양화의 경우는 작품 속에 화제를 적어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양화는 서화동원(書畫同源)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서양화와 특히 구별이 된다.
위 조선회화 명품전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평생 수집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설립한 간송미술관(보화각)으로부터 조선회화 명품 100점을 대여받아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명품 2점을 독립된 개별 공간에 비치해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하나는 신윤복(1758~?)의 미인도(美人圖, 도판1)이고 또 하나는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마상청앵(馬上聽鶯, 도판2)이다.
먼저 미인도를 보면 하얀 얼굴에 화장이 진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단정한 머리와 옷매무새, 오른쪽 방향으로 약간 고개를 숙여 비스듬히 정면을 응시한 자세를 보면 중후한 기품이 있으며 섹시한 느낌이 없으나 옷고름에 손이 가있고, 왼쪽 버선발이 치마 밖으로 삐져 나온 점에 눈길이 이르면 은근한 성적 매력을 풍긴다.
화제시(畵題詩)의 내용은 이렇다.
盤薄胸中萬化春(반박흉중만화춘)
筆端能與物傳神(필단능여물전신)
가슴에 그득 서린 일만가지 봄기운을 붓끝으로 능히 인물의 참모습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특히 인물화에 있어서 형상으로써 정신을 그린다는 이형사신론(以形寫神論)에 근거한 것이다. 그림 속 인물의 무표정은 유교윤리와 도덕이라는 규범과 인간의 본성에 따른 일탈 사이에 놓인 여성의 복잡한 심경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점에서 제화시(題畵詩)는 작품을 폭넓게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참고로 존 싱어 서전트(1856~1925)가 그린 미국 보스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부인’ 초상화,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마담X’ 초상화와 비교해 보길 바란다.
이어 마상청앵을 보면 선비가 시종을 데리고 말을 타고 봄을 찾아 나섰다가 강둑길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가는데 버드나무 위에서 꾀꼬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올려다보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린 것이다. 버드나무는 초록물이 들어 늘어져 있고, 꾀꼬리 한쌍이 아래 위에서 지저귀고 있고, 선비와 시종이 동시에 이를 쳐다보고 있다.
화제시(畵題詩)의 내용은 이렇다.
佳人花底簧千舌(가인화저황천설)
韻士樽前柑一雙(운사준전감일쌍)
歷亂金梭楊柳岸(역란금사양류안)
惹烟和雨織春江(야연화우직춘강)
아리따운 사람이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 하고 시인의 술동이 앞에 황금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어지러운 금북이 버드나무언덕 누비니 안개비 섞여 봄강을 짜낸다.
그림만 보면 지나가는 나그네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버드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한 쌍의 꾀꼬리를 쳐다보는 극히 평범한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화제시를 보면 1구는 꾀꼬리 지저귐을 여성(가인)이 생황을 불며 유혹하는 것으로 특히 생황은 여성 성기를 은유하고, 2구는 말을 탄 선비가 꾀꼬리를 쳐다봄을 남성(시인)이 이에 화답하여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더구나 술동이와 황금귤 2개는 남성의 성기와 고환을 은유하고, 3구와 4구는 베 짜는 북이 왔다 갔다 하는 등 남녀 간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은유하고 있다. 봄이나 버드나무는 모두 남녀 간의 사랑의 매개체로 묘사되고 있다.
미인도는 여성이 약간 고개를 숙여 측면 응시인데 비하여 마상청앵은 남성이 고개를 돌려 위로 응시하고 있다. 이점에서 남존여비를 엿볼 수 있고, 또 미인도는 여성이 쳐다 보는 대상이 드러나지 않음에 비하여, 마상청앵은 남성이 바라보는 대상이 완전히 드러나 있다. 이점에서 여성의 욕망은 은폐되어 있거나 타자화 되어 있고, 반면 남성의 욕망은 드러나 있다. 남녀 간의 능동적, 수동적 역할이 차별화 되어 있다.
서양화에서 누드여성이 정면으로 관객을 향하여 도발적인 시선을 던진 것은 마네가 1863년 살롱에 출품한 ‘풀밭 위의 점심’과 1865년 살롱에 출품한 ‘올랭피아’로부터 비롯된다. 미인도의 미인은 그림을 보는 남성관객이 응시의 대상이 되고, 마상청앵의 선비가 바라보는 여성은 상상의 산물이다. 양쪽 모두 응시대상은 그림 밖에 있다. 미인도의 관객은 구체적, 현실적이나 마상청앵의 여성은 추상적, 관념적이다. 이것은 남녀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마상청앵의 화제시는 이인문이 썼다는 점도 흥미롭다. 참고로 이 해석은 필자의 독자적인 해석이다. 인터넷 매체를 찾아보아도 이러한 해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동양화 감상에 있어서 화제 또는 화제시를 음미해보는 것은 또 다른 감상의 재미라고 보아 소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