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미라 동굴벽화와 그 후예들

변호사 김백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하여 제한된 해외여행의 빗장에 풀리자 필자는 2022년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2022. 6. 27.부터 2022. 7. 10.까지 사이에 스페인 북부, 포르투갈, 프랑스 피레네 국립공원 내 라몽쥐 비고레(Bigorre) 산 전망대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고, 그중에서 인상 깊은 4곳에 관한 방문소감을 남기고자 한다.

1. 알타미라 동굴벽화

알타미라 동굴(Altamira cave)은 칸타브리아(Cantabria)주 산티야나 델 마르(Santillana del Mar)에 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마르셀리노 데 사우투올라(Marcelino de Sautuola, 1831-1888)는 램프를 들고 이 동굴을 탐사하던 중에 갑자기 어린 딸 마리아가 천장을 가리키며 “아버지 저기 소가 있어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이 그림을 보게 되고,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사우투올라는 동굴벽화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고 조사연구 끝에 이 동굴벽화가 구석기시대에 그려졌다는 글을 발표하였다. 당시 학계에서는 구석기 원시인이 이렇게 탁월한 그림을 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 현대인의 낙서이거나 심지어 사우투올라의 사주를 받은 화가가 그렸을 것이라는 의심까지 하였다. 사우투올라는 억울한 심정으로 죽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프랑스 고고학자 앙리 E 브뢰이유(Henri Edouard Breuil, 1877-1961)에 의하여 구석기시대의 벽화로 밝혀졌다.1) 지금은 약 18,500전의 그림으로 보고 있다. 많은 위대한 발견이 시대의 미숙으로 인하여 무시되거나 오해를 받듯이 이 사건에서도 사우투올라가 아마추어 고고학자라는 프레임도 무시받는데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천정과 벽에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들소이고, 간혹 멧돼지, 말, 이리도 있다.(도판1)

구석기인이 이 벽화를 그린 목적이나 의도에 관하여 지금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먼저 주술설을 들 수 있겠다. 앙리 브뢰이유는 “벽화는 매우 진지한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고, 동굴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게다가 빙하시대부터 줄곧 땅속에 묻혀 있었으므로 색이 바라거나 상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을 수 있었다. 이 그림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사냥하고자 하는 동물이며 그들은 그 동물을 그리는 것으로 동물을 가두거나 잡는 마술로 여겼다.2) E. H. 곰브리치 역시 주술설의 입장에 서있다.3)

알타미라의 동굴벽화는 울퉁불퉁한 천정 곡면을 활용하여 동물에게 입체감을 주기까지 하였다. 앙리 브뢰이유의 견해는 그 당시 구석기인이 주로 잡아먹었던 사슴이 등장하지 않고 사냥하기에 부적합한 거대한 황소나 매머드를 그렸던 점에 비추어 단순히 사냥을 기원하는 주술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4)

다음 상징설이다. 양정무 교수에 의하면 구석기 동굴벽화는 “인간과 동물의 영적 교감을 나타낸 작품 혹은 단군신화처럼 동물을 인간의 조상으로 보는 세계관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보고 동굴벽화에 묘사된 동물들이 사냥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구석기인들이 숭배하고 동일시했던 영적 조상이었을지 모른다.”라고 한다.5)

마지막으로 의식설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 라스코 동굴벽화, 소베 동굴벽화 등은 입구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덤불숲 같은 곳에 위치한 S자형 동굴형태의 깊숙한 곳에 그려져 있다. 구석기인들에게는 성스러운 장소에 해당되고, 평소에 출입이 엄중하게 금지되고, 입문식을 통과한 성인남성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된 곳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곳에서 입문의식이 치러지고, 동물의 증식을 기원하는 의식6) 또는 사냥확률을 높이려는 의식7)을 치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들의 의식은 소박한 종교행위이고 이 의식을 장엄하게 하는 요소로 벽화를 그리게 되고 여기서 예술의 탄생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동시에 언어도 탄생하였다.8) 종교와 예술은 동일한 근원에서 출발하였고, 이 시기에 호모사피엔스 대뇌에 뉴런과 뉴런 사이에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유동적인 마음이 생기는 혁명적인 진화가 일어났다.9)

생각건대 위 여러 견해를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만 이해할 것은 아니다.10) 모든 종교는 안전과 풍요의 기원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과정에서 유동하는 마음이 발생된 구석기시대 호모사피엔스 중 아마 주술사로 불리는 리더는 유동하는 마음의 엄청난 힘을 알게 되었고, 이 마음을 적절히 컨트롤하기 위하여 자연동굴을 이용하여 성인 입문식을 거행하였을 것이다. 유동하는 마음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외부세계와 동형으로 대응하는 사고체계만 있었으나 유동하는 마음의 출현으로 외부세계에 실재하지 않는 세계나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를 실행하게 되었다.11) 예컨대 예술, 종교, 언어의 출현이다.

필자는 이러한 성스러운 장소를 장엄하게 하고 구성원의 단결과 안전 및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의 상징표현으로서 벽화를 그렸다고 보고 싶다.12) 단순히 동물번식이나 사냥성공을 위한 주술이라면 굳이 평소에 누구나 볼 수 없는 깊숙한 곳에 그릴 이유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환웅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날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21일간 외부세계와 꺼려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忌)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13)

삼국유사의 기록은 바로 구석기시대의 벽화를 만든 사람과 동일한 존재의 언어적 표현이다. 왜냐하면 어둠이 지배하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내면을 응시하게 된다. 이 내면 응시를 통하여 유동하는 마음을 발견하게 되고, 주술사의 인도에 따라 이 유동하는 마음을 적절하게 컨트롤하는 능력을 전수받아 공동체 일원으로 책임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입문식의 성소가 되는 천연동굴에 상징적인 표현인 벽화가 더하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 동굴과 벽화는 인류문명의 발달로 돈황 막고굴과 벽화, 뒤에서 보는 성당 등 건축물과 실내장식으로 변모하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피카소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보고 “인류는 2만년 동안 나아진 게 없구나.”라고 하면서 현대미술은 알타미라 벽화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평을 하였다. 피카소는 이에 영감을 받아서 황소 연작을 제작하기도 하였다.14) 이보다 앞서는 라스코(Lascaux) 동굴벽화에 대하여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우리의 가까운 조상들이 남겨준 예술적, 문화적 자산들에 우리가 더 보탠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조상들보다 더 위대하다는 감정을 정당화 해줄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리라는 말이다.”라고 평하였다.15)

스페인 정부는 알타미라 벽화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반관람을 금지하고, 2001년에 그 부근에 알타미라 국립박물관을 세우고 모형관을 제작하여 일반인의 관람에 제공하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은 198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밖에 유명한 프랑스 도르도뉴 몽티냑(Montignac) 지방에 있는 1940년에 발견된 약 3만년 전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라스코 동굴벽화16), 프랑스 아르데슈 콤브다르크(Combe d’Ark)에 있는 1994년에 장 마리 쇼베(J. M. Chauvet)가 발견한 약 3만 2000년 전에 동물 약 4,000점이 그려진 쇼베 동굴(Chauvet Cave)이 있다.17)

동굴의 원형은 자궁일 것이다.18) 이 시기에 자연동굴이 없는 지역에서는 암각화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서호주의 암각화가 유명하다.19) 더 나아가서 출생이 자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죽음은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출생이 이 세계로의 출발이라면 죽음은 저 세계로의 회귀가 아닐까? 단군신화에서 곰이 인간이 되는 과정은 곰의 죽음이자 인간의 탄생인 것이다.

2.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Bilbao)는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 만에 위치해 있다. 바다에 접해 있고 바다로 흘러가는 네르비온(Nervion) 강가에 조선 및 철강산업이 발달하였으나 한국의 조선과 철강이 약진하자 1970-1980년대에 급격히 쇠퇴하여 낙후된 도시로 전락하였다. 시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빌바오를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시키고자 솔로몬 R. 구겐하임재단과 협력하여 미술관을 유치하기로 결정하고, 저명한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Gehry 1929~현재)에게 설계를 맡겨 건축을 하고, 솔로몬 R. 구겐하임재단은 작품을 대여하여 드디어 1997년 구겐하임 빌바오(Guggenheim Bilbao Museum)로 개관하였다.(도판2)

프랑크 게리는 캐나다에서 유대계로 출생하였으나 10대에 부모님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건축을 전공하고 세계적인 건축가로 성장하였고,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다. 프랑크 게리는 티타늄 소재를 이용하여 외관에 갑옷을 입힌 것 같은 형태의 미술관을 완성시켰다. 이 빌바오 미술관 건축은 현재까지 빌바오의 대표적인 건물로 자리매김 되었으며 전체적인 모양은 배모양을 띄고 있는데 바다에 인접한 네르비온강과 어울리는 것이다. 또 다른 프랑크 게리의 유명한 작품으로 2003년 LA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지어진 ‘디즈니 콘서트홀’이 있고, 우리나라의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도 그가 설계하였다. 프랑크 게리는 건축이란 그것이 지어지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 얘기해야 하며 영원함을 동경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20)

프랑크 게리의 건축양식은 해체주의에 속한다. 해체주의는 1960년대 종래의 로고스 중심주의적인 철학을 근원적으로 비판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가 주장한 독자적인 사고방식으로 예술, 문학, 건축 등에 양향을 끼쳤다. 예술과 건축학적으로는 파괴 또는 해체, 풀어헤침의 행위적 관점에서 부정적 경향이 강한 예술사조이다. 해체란 조립 또는 조형에 반하여 분해 또는 풀어헤침 그리고 건설에 반하여 파괴를 지칭하는 행위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 주의는 부정적 이미지를 뛰어넘어 긍정적 이미지를 포착해야 한다. 다만, 근래에 들어 해체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에 물이 샌다든가 죽는 공간이 지나치게 많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발생하여 비판을 받고 있다.21)

미술관은 구석기인의 동굴벽화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관은 많은 방실과 미로와 같은 동선으로 이루어지고, 조명을 어둡게 하며 조용한 분위기가 요구되고, 사진촬영이 제한되거나 플래시 사진 촬영이 아예 금지된다. 한마디로 성소의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특히 일본미술관을 가보면 더욱 그러하다.이러한 관점에서 구겐하임 빌바오의 상설전시물 중 특히 1층 103호에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 1939-현재)의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을 눈여겨보았다.

리차드 세라는 미니멀리즘에서 출발하여 과정미술로 나아간 미술가다.22) ‘미니멀리즘’이란 미국의 미학자 리처드 월하임(Richard Wollheim, 1923-2003)이 1965년에 쓴 글 미니멀아트(Minimal Art)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그 의미는 작품을 제작이나 구성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결정이나 제거의 견지에서 바라보는 점에서 예술적 내용이 최소화 되는 미술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부연하면 먼저 제작 내지 결정이라는 측면에서 미니멀리즘 미술가들은 모더니즘 미술가들과 달리 작품을 직접 제작하지 않았다. 즉, 산업적 제작방식이나 일상용 제품을 활용하거나 한다. 산업자재로 규격화된 재료들(합판, 형광등 등)을 사용하거나 직접 단조하기 힘든 대상들을 제련소에 맡기는 방식을 거친다. 작품의 결정은 미술가가, 작품의 제작은 타인(업체기술자)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체계화 되었다.

즉, 구성 대 제거라는 측면에서 제작하지 않고 결정한다는 미니멀리즘의 원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반면 구성 대 제거라는 측면은 작품의 외형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의 외형적 특성은 매우 단순하다는 것이다. 구성에 반대하는 이유는 구성이 작가의 내면에서 나오는 관념적이고 자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23) 미니멀리즘 미술가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저드, 이우환을 들 수 있다.

리처드 세라는 작가의 개입이 없는 것처럼 재료 고유의 속성을 자동적으로 노출시켰고, 주변공간 자체가 작품의 형태를 만들어 내도록 함으로써 작가의 의도 자체를 제거하고자 한다. 세라는 조각을 <형상-배경>의 관례를 전복하는 방식을 취하여 다시 정의 하였다. 조각이란 개개의 대상이 용해되어 시간 속에서 경험되는 조각적 장(Sculptural Field)이다. 조각이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시간적 경험의 장이 되었으니 이런 조각에서 <형상-배경>의 대립은 절로 무너져 수평적 장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세라는 과정이 곧 결과가 되게 하는 미술을 개척함으로써 수단과 목적이라는 미술의 전통적인 대립을 넘어섰다. 세라의 과정미술은 재료, 행위, 장소, 시간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물질적 토대에 입각하여 시각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조각을 만들어 냈다.24)

세라의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는 8점의 녹슨 거대한 철판으로 제작하고 구성되어 있다.(도판3)

작품마다 다양한 철판이 겹겹이 세워져 구성되어 사이사이에 다양한 길과 방실(선과 원)을 걷는 방식으로 경험할 수가 있다.25) 녹슨 철판은 시간의 무상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녹슨 철판은 알타미라 벽화의 붉은색과 통하고, 길과 방실은 동굴의 미로와 원형방을 연상시킨다. 고금이 한자리에 있는 것이다.(도판4)

그러한 까닭에 ‘The Matter of Time’이란 제목이 붙여진 것일까? 그밖에 유명한 조각으로 제프 쿤스(Jeff Koons, 1955-현재)의 퍼피(Puppy), 튤립(Tulip), 루이즈 브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의 마망(Maman)이 있고, 제니 홀처(Jenny Holzer, 1950-현재)의 빌바오를 위한 설치작품이 있다. 빌바오 미술관은 야경이 무척 아름답다. 밤늦게 또는 이른 새벽에 네르비온강을 따라서 산책하면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또 다른 별미를 느낄 수 있다.

3. 살라망카 대성당

살라망카(Salamanca)는 스페인 북서부 카스티야 지방에 위치한 살라망카주의 주도이다. 살라망카 구시가지에 살라망카 대학, 살라망카 대성당, 마요르 광장이 눈에 띤다. 살라망카 대학은 1218년에 설립되었고, 스페인 최초의 대학으로 근대문학의 효시인 돈키호테(Don Quixote)를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1616)가 나온 대학으로 유명하다. 마요르 광장 주변 건물벽에 있는 초상화에서 세르반테스를 만날 수 있다.

살라망카 대학 부근에 살라망카 대성당이 구성당과 신성당이 나란히 접하여 지어져 있다. 도시발전과 인구유입으로 구성당만으로는 신도들을 충분히 수용하기가 어려워지자 신성당을 짓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신·구성당의 차이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구성당 정면에 장식된 장미창과 신성당의 정면에 장식된 시계라고 생각한다.(도판5)

스페인은 카톨릭 국가이고 종교개혁이 유럽을 휩쓸 때 카톨릭 수호자로 자처하였다. 카톨릭은 계급주의를 내재하고 있는데 절대자를 정점으로 하여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 신자로 구성되는 수직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빛은 절대자의 상징으로 이 장미창을 통하여 성당 내로 화현하는 것이고, 성당 내의 장식과 좌석도 계급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26) 성당은 성소이다. 동굴벽화와 같이 화려하게 장엄으로 치장을 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건축되고 장식되었다. 고딕건축과 더불어 등장한 스테인드글라스도 벽화에 지나지 않는다.

빛은 시간을 의미한다. 즉, 시간의 지배자는 절대자이고, 현실에 있어서 절대자의 대변인 사제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태양력인 그레고리력이 교황 그레고리 13세에 의하여 제정된 것임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동양의 경우 중화문화권은 중국 천자가 책력을 만들고 주변국에 배포하여 시간을 지배하였다. 조선이 연호를 중국의 연호를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과학기술 발전으로 신항로가 개척이 되고 종교개혁도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일반민중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절대자와 신자들을 중개하는 사제계급을 없애고 절대자와 신자 간에 직접관계를 맺는 만인제사장 사상을 전개하여 카톨릭의 계급주의를 타파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개신교 교회는 성당의 내부적 구조와 다르게 성상을 비롯한 일체의 장식과 차별화된 좌석 배제하는 수평적 사고를 실현하였다. 살라망카 신성당의 건축을 주도한 계층은 신흥 상공업 시민계급으로서 이러한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신성당의 정면에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근대를 상징하는 시계를 설치하고 내부의 장식도 단순화 시켰다.27)(도판6)

이러한 건축 메세지는 앞으로 카톨릭 종교도 과학적 기술로 만들어진 시계와 같이 과학과 함께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또한 시간의 지배자가 교회 권력자가 아니고 근대기술로 살아가는 일반시민이라는 뜻이 아닐까?

카톨릭 성당이지만 제단을 홀 중앙에 신자 좌석과 동일한 평면에 설치하여 근대시민정신을 구현한 성당으로 필자가 들러본 프랑스 노르망디 르아브르(Le Havre)에 1957년에 완공된 생 조제프 교회(St Joseph’s Catholic Church)를 들고 싶다. 200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28)

과거에 시간은 국가가 절대권력자가 되어 통제하였으나 이제는 시민이 스스로 통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통금시간을 상기해보라. 이제 모든 시민은 개인용 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시간은 개인이 스스로 각자 지배하는 것으로 변모된 것이다. 권력의 축이 사제 등 지배층으로부터 시민에게 넘어갔다는 상징이다.29) 나아가 인간은 신이 지배하던 시간을 전기불로 밤을 지배하고, 비행기와 스마트폰으로 공간까지 지배하기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노화에 도전하고 있다.

예약문화가 바로 이것을 가장 철저하게 보여준다. 필자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프랑스 남부 아비뇽 박물관을 방문하는데 출근시간보다 5분 빨리 정문에 도착한 공무원이 청사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차를 마시면서 자기의 시간을 지배하는 장면을 보았고, 필자의 일행이 예약식당에 오픈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였으나 잡담하며 담배피우는 종업원으로부터 입장이 거절되어 춥거나 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식당 내의 시간의 지배자는 종업원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신·구 대성당을 비교하여 보려면 대성당 남서쪽 모퉁이에 있는 종탑으로 올라가는 출입구에서 티켓을 사서 관람하면 된다. 과학의 발전에 의한 대항해시대를 맞이하여 전 지구적인 시간의 지배는 대영제국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1884년 국제 자오선 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 왕립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이 기준자오선으로 확정되고, 세계적인 시간통일이 이루어졌다. 영국이 해상을 제패한 힘에서 나온 것이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법정의 시간은 법관이 독점하였고, 개정시간은 오전 10시, 오후 2시였다. 모든 당사자는 언제 호명될지 몰라서 화장실에 갈 때도 법정경위에게 알리고 가야만 하였던 시절이었다. 그 후 시간의 지배자가 시민에게 이전되면서 시차제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아직까지 개개 사건별로 정확히 개정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법관에게 시간의 지배권 개념이 미약한데서 비롯된다. 이 역시 얼마가지 않아서 사라질 것이다. 한국에서 아직까지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대표적인 곳이 유명한 종합병원 진료시간이다. 권력이 의사에게 있다는 뜻이다.

4. 렐루 서점

포르투갈의 포르투(Porto)는 요즘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뜨고 있다. 그곳에 1906년 문을 연 렐루 서점(Livraria Lello)을 소개하고자 한다. 입장권이 5유로임에도 불구하고 입장대기객이 기다란 줄을 서고 있다. 세상에 어느 서점이 입장료를 받는단 말인가? 물론 책을 구매하면 입장료를 책값에서 공제해준다. 필자의 경우 외국어 서적을 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입장료만 내고 말았다. 서점이란 책을 파는 곳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을까? 그 비밀은 서점의 내부구조에 있다.

서점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구조에 정면의 파사드는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으로 되어 있다. 지하는 자체 사무공간으로 보이고, 1층과 2층에 서적을 진열하고, 2층 한켠에 작가의 희귀본 도서를 진열한 서고가 별도로 있는데 마치 성물보관소처럼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 1층 중앙에 2층으로 올라가는 레드카펫의 Y자형 계단이 교차하고, 2층 천정이 노출되어 있고, 천정에 현대판 스테인드글라스 역할을 하는 직사각형 천장화 형광등판(3.5M×8M)이 설치되어 있고, 그 주위를 정교한 국화 또는 연꽃 유사한 문양의 조각 등 다양한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2층 천정 바로 밑 벽면에 인류에게 위대한 빛을 남긴 인물들의 사진, 올해의 인물이 담긴 타임의 커버사진으로 된 인테리어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고, 서가에는 두상조각도 부착되어 있다. 성당 돔의 천장화는 천상의 영광을 상징하나 렐루 서점의 형광등 천장화는 지상의 노동자의 수고로움과 노동의 기쁨을 상징한다.(도판7)

천정 형광등판에 라틴어 ‘Decus In Labore(노동에 영예를)’란 글귀와 함께 망치질 하는 대장장이 모습이 담겨져 있다.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통념상으로 노동과 책은 서로 대척개념으로 놓이지 않았는가? 그러나 대장장이에게는 노동과 예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대장장이는 오늘날의 조각가에 유사하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를 그린 구석기인들에게도 사냥은 노동이요, 예술이요, 생존술이었고, 노동과 예술이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30) 농경사회가 도래하고 잉여물이 생기고 이어 계급이 분화되자 노동과 책은 분리되었다. 렐루 서점이 노동과 책을 통합시키고자 한 것은 노동자에게 책을 보급하므로써 지식의 대중화를 선언한 것이리라. 다시 말하면 사냥꾼에게 그림과 예술을 돌려주고자 한 것이다.

출입구와 전면을 제외하고는 벽면이 모두 서가로 이루어져 자연빛이 차단되어 있는 반면에 강약을 조합한 실내조명으로 어두우면서도 책을 선택하는데 지장이 없는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마치 앞서 본 현대판 알타미라 동굴이나 미술관의 방실, 성당을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비롭고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2층으로 올라가는 Y자형 붉은색 쌍계단은 동굴의 방실을 이동하는 통로이기도 하고, 천국으로 올라가는 문이나 유명배우가 밟는 레드카펫이 깔린 할리우드 아카데미 시상식장 또는 칸영화제 시상식장의 계단을 올라가는 느낌도 준다. 실상은 진리로 올라가는 계단이다.(도판8)

2층의 위대한 문학가, 예술가, 과학자의 초상은 성당 안에 설치된 성인의 성상과 같은 느낌을 준다.

오늘날은 과학의 시대이다. 과학이 진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를 구원할 존재는 바로 책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도록 한 것은 아닐까? 광기와 무지로부터 구원은 과학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31) 책은 정보를 대표한다. 과거 정보는 왕, 귀족, 사제가 독점하였다. 책은 이들이 읽고 소장하는 것이다. 교육이 대중화되면서 정보가 일반인에게 공유되기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제한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서점의 등장은 누구나 쉽게 정보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었으며 유튜브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이제 거의 모든 정보는 대중화되고 공유화 되고 있다. 렐루 서점의 성공의 비밀은 우리의 원초적 귀소본능을 자극하도록 서점 내부인테리어를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라고 하겠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32) 유사한 컨셉의 서점으로 안위크역을 개조해서 만든 영국의 바터북스도 유명하다.33)

5. 맺는 글

이상의 4곳을 관통하는 Key Word는 ‘동굴’이다. 동굴은 우리가 온 곳이고 돌아갈 곳이다. 어머니의 자궁이 바로 동굴로 상징된다.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회귀하듯이 우리는 고향에 안주해야 비로소 평안을 느낀다. 어린아이들을 관찰해보면 어릴 때부터 벽장, 헛간, 덤불 등 동굴같은 곳에 숨기놀이를 좋아한다. 인간은 나무 위에서 살다가 지상으로 내려와서 동굴을 은신처, 피신처로 이용하고 불을 피워서 맹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였다. 동굴벽화에 붉은 염료를 쓴 것은 불과 같은 효과를 주었을 것이다. 붉은색은 철분에서 얻었는바 현대문명이 철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천연동굴에서 문명의 발전으로 인공동굴이 건설되었다. 이 인공동굴이 성당이나 석굴, 템플 등 성소로 진화되고, 현대에 이르러 미술관이 새로운 동굴로 나타났다고 보아야 한다. 아름다움은 은신처다. 아름다움에는 은폐가 본질적이고, 투명성은 아름다움과 화합하지 못한다고 한다.34) 이점에서 천연동굴이나 인공동굴을 막론하고 동굴은 아름다움의 원천이 된다.(2022.10.26.탈고)

각주

1) 리처드 카벤디쉬,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의 역사유적 1001』, 김희진 역, 마로니에북스, p540

2) 네이버, 마르셀 데 사우투올라, 필라테리아/브뢰이유

3) E.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백승길, 이종승 역, 예경, p42

임두빈, 『서양미술사이야기』, 가람기획, p12

마이클 버드, 『모두의 미술사』, 박재연 역, 이마루, p23

4) 양정무, 『미술이야기1』, 사회평론, p93

5) 양정무, 『미술이야기1』, 사회평론, p95-98

6) 나카자와 신이치,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김옥희 역, 동아시아, p23

7) 박문호, 『빅히스토리공부』, 김영사, p244

8) 박문호, 『빅히스토리공부』, 김영사, p246-249

9) 나카자와 신이치,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김옥희 역, 동아시아, p24-25

10) 조르주 바타유,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차지연 역, 워크룸, p21, p64

11) 나카자와 신이치,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김옥희 역, 동아시아, p26

12) 드위트 외 2인, 『케이트 웨이 미술사』, 조주연 외 3인 역, 이봄, p477-478

13) 『삼국유사』, 일연(이재호), 솔, p68

14) 양정무, 『미술이야기1』, 사회평론, p74

15) 조르주 바타유,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차지연 역, 워크룸, p18

16) 유물보존을 위하여 폐쇄하고 1983년 인근에 복제관을 만들었다.

17) 다큐멘터리 <잊혀진 꿈의 동굴>,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2013

2014년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되고, 엄격한 출입제한으로 보호조치 되고 있으며 인근에 모형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18) 플라톤 『국가』 7권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를 참조. 영화(소설) 영국인 환자(The English Patient)를 보면 사막동굴에 유영하는 인간군상의 벽화를 볼 수 있다.

19) 박문호, EBS, <세계테마기행: 서호주, 태초의 지구를 만나다 1부>

20) 마크 어빙,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건축 1001』, 마로니에북스, p724

21) 나무위키, <해체주의> 참조

22) 조주연, 『현대미술강의』, 글항아리, p309

23) 조주연, 『현대미술강의』, 글항아리, p241-244

24) 조주연, 『현대미술강의』, 글항아리, p311

25) 최경화, 『스페인 미술관 산책』, 시공사, p369

26) 양정무, 『미술이야기7』, 사회평론, p325

27) 개신교는 십자가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성상을 없앴다.

28) 마크 어빙,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세계건축 1001』, 마로니에북스, p508

29) 한병철, 『권력이란 무엇인가』, 문학과 지성사, p22

30) 조르주 바타유,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 차지연 역, 워크룸, p47

31) 레너드 올로디노프,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정영옥 역, 세종서적, p208

리처드 도킨스,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2』, 김명남 역, 김영사, p578

32) EBS, <세계테마기행: 올라 포르투갈 3부 렐루서점>

33) 유튜브, <장동건의 백투어북스>, TV CHOSUN, 2022. 3. 27.자

34)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문학과 지성사,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