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백영
1. 고궁박물관
자연의 향기올해 설날 연휴(2014. 1. 29.~ 2. 2.)에 대만 고궁박물관을 다녀오게 되었다. 대만 고궁박물관은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메트로폴리탄과 더불어 세계 4대 박물관으로 통칭되고 있다. 대만 고궁박물관은 장제스(將介石)가 1949년 중국 본토에서 마오쩌둥(毛澤東)에 패하여 대만으로 도망가면서 싣고 간 청나라 황실에서 수집한 골동품 중 명품 약 61만 점을 토대로 세워지고 지금은 약 75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2. 고궁박물관 3대 보물 모공정, 육형석, 취옥백채
고궁박물관 3층에 3대 보물이라고 일컬어지는 모공정, 육형석, 취옥백채가 진열이 되어 있다.
모공정 (毛公鼎)

모공은 서주(西周, 1046-771 BC) 말기에 제작된 청동솥으로 발이 3개, 높이 53.8cm, 배부분 깊이 27.2cm, 입지름 47cm, 무게 34.7kg로 되어 있다. 정은 주로 고기를 삶아 익히는 제기로 사용 된다. 이 정이 유명한 까닭은 솥 안에 7단락 499자로 된 명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주나라 선왕(宣王)은 즉위한 직후 조정을 바로잡기 위해 숙부인 모공으로 하여금 나라 안팎의 크고 작은 일을 돌보도록 부탁하였다. 모공은 정사를 살피는데 힘쓰고 사사로움이 없었다. 임금은 모공을 표창하고 많은 녹봉을 하사하였다. 이에 모공은 정을 주조하여 후손들에게 전하여 가보로 영원히 보존하도록 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선왕은 BC 827- BC 782까지 재위하였고 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정(靜, 靖)이다.
모공정이 3대 보물 중 하나로 등극한 데에는 솥 안의 한자 명문이 한자의 발전사를 연구하는데 높은 학술적 가치를 가져다 준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모공정은 청나라 황실의 보물은 아니고 민가에서 발견되어 여러 손을 거쳐 본토 국민당 정부의 실력자에게 헌납되었다가 고궁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이 모공정을 소장한 자는 모두 패망하는 불운을 가져왔다고 한다. 천하의 명기는 개인의 사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박물관에 소장되어 천하인의 소유가 되어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재앙도 멈추는 법이다.
육형석 (肉形石)

육형석은 청나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 5.73cm, 넓이 6.6cm, 두께 5.3cm의 갈색 돌로 다듬어져 있는데 소동파(1037-1101)가 항주자사 시절에 개발한 동파육(東坡肉)을 빼 닮았다. 돌의 표면은 익힌 돼지고기의 비계를 그대로 표한하고, 속은 돼지고기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취옥백채(翠玉白菜)

청나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길이 18.7cm, 넓이 9.1cm, 두께 5.07cm의 비취와 흰색 옥으로 배추를 다듬고, 여치 1마리와 메뚜기 1마리를 새겨 넣었다. 이것은 청나라 광서제(光緖帝, 1874-1908)의 근비(瑾妃)가 혼인 할 때 궁으로 가져간 혼례품이라고 한다. 백색과 비취색, 메뚜기와 여치는 음양, 순결과 다산을 상징하므로 혼례품으로 제격이다. 백채는 백재(百財) 또는 발재(發財)와 발음이 동일하여 부귀를 상징한다. 필자는 3가지 보물을 보고나서 이것이 고궁박물관의 3대 보물이 되어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으로 하여금이 보물을 보러 오도록 하는 것은 기물 나름대로의 문화적 가치와 예술성에도 있지만 인간생존이라는 무의식의 바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싶다. 이보다 나은 예술적 가치나 기량을 지닌 보물도 고궁박물관에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솥은 식사를 만들어 내는 도구이고, 고기와 채소는 식사의 기본 재료이다. 과거에 가난하면 채소위주의 식사이고, 부유하면 자주 고기를 곁들인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먹고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하여 농사를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일로 보았다.
맹자(양혜왕장구편)에 따르면 “백성으로 하여금 산 이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송함에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의 시작이다. 나아가 백성들이 말하기로 “어찌 백성들로 하여금 곤궁함에 이르게 해서 부자간이 서로 만나보지 못하며 형제, 처자가 서로 이산되게 하는가 라고 한다면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임금께서 백성들과 더불어 즐기시지 않기 때문이다”(성백효 번역)고 하여 위정자의 가장 큰 책무는 백성들의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과 위정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 오늘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중국 국민은 등샤오핑(登小平)의 흰쥐·검은쥐론(백묘흑묘론)과 같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고와 행동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중국인의 현실적인 경제개념과 행동 양식이 위 3가지 기물을 3대 보물로 삼게 된 것이다. 백성들은 3대 기물을 통하여 위정자들에게 그 책무를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3. 대한민국의 국보

대한민국의 국보 제1호는 경복궁 앞의 남대문 바로 숭례문(崇f禮門)이다. 임금의 위치는 남면(南面)하고 있으므로 궁 앞에 이 남대문을 세우고 숭례문으로 이름 지은 것이다. 숭례문이란 국가의 치국의 근본을 예에 둔다는 것이다. 논어(위정편)에 의하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인도하기를 법으로써 하고, 가지런하기를 형벌로써 하면 백성들이 형벌만 면하려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을 것이다. 인도하기를 덕으로써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예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함이 있고 또 선에 이를 것이다.”(성백효 번역) 라고 하고 있다.
그리하여 조선은 예로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였으므로 명분이 득세하고,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은 뒤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기풍이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면 허례허식으로 변질되게 되고 백성의 경제생활은 피폐하게 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이 이념으로 갈라져서 대립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08년에 숭례문이 불탔다. 이것은 긍정적으로 보면 위정자 중심의 공리공론적인 명분론을 무너뜨리고, 실용적이고도 국민의 삶의 질의 개선에 중심을 두라는 하늘의 시그널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국민의 성금으로 다시 복원된 숭례문은 위정자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예가 재해석되어 숭상되어야 할 것이다. 즉, 엄중한 법률과 복잡한 규제가 우선이 아니고, 도덕이 중시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궁의 3대 보물은 무엇일까?
마침 필자가 간 때에는 명 4대가인 센주우(沈周, 1427-1509)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서 센주우의 글씨와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고, 특별전시실에 근대 동양화의 대가 장다첸(張大千, 1899-1983)의 풍경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다. 근래 경매에서 장다첸의 강산만리도가 100억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된바 있다.
(2014.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