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 만능주의 벗어나 보다 문명화한 사회로 가는 계기 됐으면”

[한국일보] 2015. 2. 27. 조원일 기자

“안타깝게 처벌 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라도 형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문명화된 사회로 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판사 시절이던 1990년 6월 현직 판사로는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간통죄에 대한 위헌제청을 제기했던 김백영(59ㆍ사법연수원 16기ㆍ사진) 변호사는 지난 25년 간 다섯 번의 심판 만에 간통죄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26일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김 변호사가 위헌제청에 나서게 된 것은 검찰이 간통죄 피의자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부산지법에서 근무했던 김 변호사는 “피의자로 지목된 여성은 가정이 이미 파탄 난 상태에서 남편으로부터 극심한 가정폭력을 당하던 와중에 간통을 하게 된 경우였는데 구속까지 시킬 수는 없었다”며 “가정사는 민사적으로 해결할 문제지 국가가 나서 처벌할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영장 기각 후 곧바로 위헌제청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여성단체들은 ‘간통죄가 위헌 결정을 받으면 바람피는 남성들로부터 여성 배우자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로 김 변호사를 공격해댔다. 김 변호사는 “간통죄 옹호진영은 실증적 통계나 분석 없이 추상적인 주장만 반복했지만 실제 간통죄로 처벌 받는 사람들은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열악한 여성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간통죄를 입증하기 위한 조사와 그 현장 적발과정에서 벌어지는 극도의 사생활 침해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수준이었다”며 “구체적으로 사건을 들여다 볼수록 시대착오적인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위헌제청 직후 몰려드는 기자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유로 대전지법 서산지원으로 전보조치된 후 7개월 만에 법복을 벗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는 “동료 법관들에게 ‘너무 앞서나간 게 아니냐’는 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김 변호사는 “법과 처벌만을 앞세우면 기층민에 대한 처벌만 늘어날 뿐 질서 유지에는 오히려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었다”며 “결혼 생활에 책임을 다하는 개개인의 도덕적 함량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