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재판소

[부산법조] 2019. 4. 15. 변호사 김백영

소위 사법농단이라는 폭발물이 터지는 바람에 현재의 사법부는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사법농단이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해서 대법원 행정처장과 법원행정처 차장이 소속 행정처 법관을 동원하여 각종 재판에 개입하여 재판을 왜곡한 사건을 말한다. 여기에 관련된 자들은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우리 사법부의 발전을 위한 진통으로 받아들여 승화시키면 마치 종기를 짜내어 건강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의 근대적 사법제도는 일본을 통하여 들어왔고 이렇다보니 일본의 재판운용과 판례를 많이 답습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동안 식민지 시대의 청산이란 측면에서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을 해온 결과 모든 분야에 축적된 판례로 인하여 더 이상 일본 판례를 참고할 필요는 없으나 아직도 미흡한 분야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본다.

필자는, 최근 일본법원의 판사로서 33년간 재판을 하다가 퇴임하고 메이지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이직한 세기 히로시 교수가 쓴 「절망의 재판소」(2014년간), 「법정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2015년간) 2권을 읽고 우리의 사법행정에 일본의 그림자를 본 느낌이 들었다. 일본은 대법원장을 최고재판소장관, 고등법원장을 고등재판소장관, 지방법원장·가정법원장을 재판소장이라고 부르고, 우리의 법원행정처를 사무총국, 그 장을 사무총장이라고 부른다.

세기 히로시 교수는 일본은 일반적으로 선진국이지만 사법제도의 운용은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사무총국을 통하여 전국의 법관의 재판, 논문발표, 사회적 발언을 통제하고 있고, 특히 국가 또는 행정부와 관련된 사건의 판결은 극히 보수적이고, 국가이익으로 은밀하게 통제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일본의 관료적인 법관시스템 아래에서 은밀하게 재판과 법관통제를 하고 있지만 내부적인 고발이 없는 탓에 썩어가고 있고, 바람직한 판사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위 책은 폭로하고 있다. 참고로 몇 군데를 인용해보겠다.

최고재판소 장관, 사무총장, 그리고 그 뜻을 받은 최고재판소 사무총국 인사국은 인사권을 한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재판관들을 마음대로 지배·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전혀 예상 밖의, 그리고 누가 봐도 ‘아아,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할 만한 인사를 두 번, 세 번 거듭 당하고 난 뒤 결국 그만둔 재판관을 나는 몇 명이나 보아왔다.

이건 젊은 재판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재판장들도 마찬가지여서, 사무총국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향과 다른 판결이나 논문을 쓴 사람 등, 사무총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에 대해서는 소장이 되는 시기를 몇 년이고 늦춰서 후배 뒤에 부임시켜 굴욕감을 맛보게 한다거나, 혹은 소장 자리에조차 앉히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괴롭히고 또 본보기로 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방가정재판소 소장들에 대해서까지 당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원래대로라면 다음에는 도쿄 고등재판소의 판사장이 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을 몇 년이고 지방 고등재판소의 재판장으로 두는 식으로, 역시 보복성 인사를 할 수 있다. 이는 본인에게 있어서 상당한 손해다. 자존심에도 상처를 받게 되며, 단신 부임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사가 무서운 것은 이 같은 보복이나 본보기가 언제, 무엇을 근거로 행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위헌판결을 한 경우’ 등과 같은 형태로 명시되어 있다면 그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안심을 할 수 있을 테지만, ‘어쨌든 사무총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재판관들은 넙치처럼 늘 그쪽만을 엿보며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당연히 판결의 적정성이나 당사자의 권리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또한 사무총국은 그쪽 입장에서 봤을 때 재판관이 범한 ‘잘못’이라 생각되는 재판이나 연구, 그리고 공적‧사적 행동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여 결코 잊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그 ‘잘못’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지방의 소장이 되어 있는 재판관에게 “당신은 더 이상 수도권으로는 절대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정년까지 지방을 돌아다니기 바랍니다. 하지만 공증인이라면 할 수 있게 해드리지요.”라는 형태로 최후의 통첩을 날려 언젠가는 반드시 보복을 한다.[절망의 재판소 102-103쪽]

필자도 과거 판사로 재직하면서 1990년 최초로 간통죄 위헌 제청 결정을 하자 곧바로 부산에서 서산으로 좌천성 인사발령을 받은바 있다.

화해의 강요와 강압도 일본 민사재판의 특징적이고도 커다란 문제이다. 일본 재판소에서의 화해는 당사자가 번갈아가며 재판관과 면접하고, 또 상당한 기일을 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결코 국제표준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화해는 반드시 당사자 쌍방이 마주한 자리에서 행해지며, 재판관이 장시간에 걸쳐서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일도 없다. 재판관이 당사자를 한쪽씩 만나 화해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중대한 절차보장 위배다. 다시 말해서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대방은 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절망의 재판소 147-148쪽]

필자는 조정사건의 경우 양 당사자 분리진행과 아울러 대리인이 방해가 된다며 퇴정을 요구받은 적도 있으며 심지어 강제조정 결정에 이의를 하자 패소판결을 받은 적도 있다. 재판부가 강제조정 결정을 하더라도 이의가 들어오면 조정결정과 동일·유사한 판결이 예상될 때 강제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사법불신의 원인이 된다.

일본은 민주적, 선구적, 혹은 상식적으로 타당한 판결이 지방재판소에 가장 많으며 상급심에서 그것이 뒤집히는 경우도 역시 많다. 이는 민사에서나 형사에서나 마찬가지다. 앞에서 예로 든 국가배상법 사건에 대해서도 제1심은 인용했으며, 뒤에서 얘기할 다치카와 반전(反戰) 전단지 배포사건도 제1심 판결이 훨씬 더 타당했다. 내가 제1심에 관여해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국가의 책임까지도 인정했던 클로로퀸 약해(藥害) 소송사건에 대해서도, 스몬 약해 소송사건 등과 마찬가지로 약사 행정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도쿄고등재판소 1988년 3월 1일, 다오 도지 재판장)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의 재판소는 문제가 큰 피라미드형 히에라르키이고, 또 합의체 전체라기보다는 나이가 많고 상층부에 있는 재판관들이 상급심 재판관을 맡기 때문에 위와 같은 결과에 이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식 있는 재판관들이 점점 의욕을 잃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기 쉬운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국민‧시민도 재판이 3차례나 있으니 틀림없이 공정한 재판이 행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 ‘대체 무엇을 위한 3심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법정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61-62쪽]

우리의 경우도 하급심의 진취적인 판결이 상급심에서 상당부분 파기된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대법원의 보수화는 국가이익에 관련되면 더욱 그러하다. 민사사건은 심리불속행제도로 사실상 2심제로, 형사사건은 살인 등을 제외하고 양형부당은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제한되어 있어 사실상 2심제로 운용되고 있다.

진술이 없는 물적 증거만으로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아 잘 정리된, 그리고 방대한 진술조서에 의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형사소송을 구성하기를 좋아하는 풍조는, 형사소송을 ‘범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건의 배경이나 동기까지도 상세히 밝혀 피고인에게 죄를 인정케 하고 반성하게 하고, 사과를 하게 만드는 장소’로 생각하는 그런 특이한 ‘감각’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자백 편중 경향’이 ‘협박적이고 비인간적인 인질사법’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는 형사사법에 대한 국민‧시민과 언론의 인식에도 한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법정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112쪽]

우리의 형사사건은 많은 경우에 유죄의 예단 하에 진행되며, 재판장이 신문하는 경우는 대부분 유죄의 관점에서 질문하고 있고, 필요적 보석이 아니고 예외적 보석으로 운영되고, 공판중심주의가 미흡하다. 법정증언보다 조서기재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행정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심리를 하는 재판관은 10명 중 1명 정도이다. 대부분의 재판관은 소송요건이 구비되었는지 세세하게 살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 싶으면 옳다구나 하고 각하한다. 그럴 때면 50년 이상이나 지나 곰팡이가 슬어버린 듯한 판례가 금과옥조처럼 인용된다. 구성원 전원이 행정사건 다루기를 두려워하는 듯한 재판소를 만나게 되면 이러한 전제문제 심리에만 3년이나 허비하는 경우도 있다. 최고재판소까지 생각한다면 대체 언제나 심리가 끝날지 알 수가 없다.

본안 심리에 들어가면 재판관은 이상할 정도로 국가, 지방공공단체, 행정청 등과 같은 피고 측 편에 서는데, 요즘 들어 그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동안은 재판관들에게서 전쟁에 대한 반성과 신헌법(1946년) 하에서 새로운 사법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사무총국 행정국에서는 예전의 그림자조차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법정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174-175쪽]

우리의 행정소송의 운용실태를 보면 행정처분의 적법성 추정이란 전제에서 행정기관이 제출한 증거는 국민이 제출한 증거에 비하여 우월한 대접을 받고 있다. 조세소송에서 법관도 국록을 받는 지위에 있다 보니 국고를 지켜야 한다는 무의식의 발로인지 납세자가 신청한 증인의 증언도 잘 믿지 않고 국가가 패소가 확실하면 조정권고를 통하여 소송비용 절감을 지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스템 측면에서 법원행정처에 의한 법관통제를 완전히 없애고, 법관계급제 해소, 인사제도의 민주적 운영 등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운용측면에서 화해조정기일에 쌍방 분리진행을 없애고, 제1회 기일에 화해와 조정이 불성립되면 즉시 판결을 선고해주고, 형사재판에서 무죄 추정에 따라 무죄선고시 판결이유를 간소화하고, 반면 부인사건에서 유죄선고시에 납득할만한 증거제시와 유죄이유를 설시하여야 하고, 행정소송에서 적법성 추정의 예단을 벗어나 국가제출 증거가치와 국민제출 증거가치를 동등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법제도는 제도운용자인 법원이나 법관이 아닌 이용자인 국민의 관점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시급하다. 재판에 참여하는 변호사는 전문적인 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서 재판부의 부당한 처사에 의연히 대응하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사법부 발전과 신뢰구축에 일조를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일종의 내부자 고발로 쓴 글이 위 책의 내용이다. 사법부 스스로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은 외부수사로 일본의 위 책에서 폭로한 내용이 현실로 드러남으로 인하여 재판을 받고 있다. 조용히 사법농단의 재판을 지켜보자. 다만 신임 대법원장이 강한 개선의지를 갖고 스스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이왕 여기까지 온 만큼 우리 법원이 헐은 상처를 치유하여 건강하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