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김백영

유가(孺家)의 이상사회는 요순(堯舜)시절을 지향한다.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선양하였다. 서경(書経)에 따르면(이하 김학주. 서경에서 인용) 순 임금은 선양에 앞서 우(禹)에게 말씀하셨다.
“그대 우에게 고하오! 내가 임금 자리에 있은 지도 33년이 넘었고 나이도 이미 90을 넘어 백살이 되어 가니 일에 싫증이 나는 구려. 그러니 당신이 게을리 말고 나의 백성을 다스려주오.”
우가 대답하였다.
“제 덕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며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고요(皐陶)는 힘써 덕을 닦아 그의 덕이 세상에 널리 퍼져서 백성들이 그를 따르고 있습니다. 임금님께서 굽어 살피십시오.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것도 그의 공적 때문이요, 그 사람을 버리게 되는 것도 그의 공적 때문이며,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그에 관한 말을 하게 되는 것도 그의 공적 때문이고,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우러 나오는 것도 그의 공적 때문입니다. 임금님께서는 그의 공적을 생각하십시오.”
순 임금님이 말씀하셨다.
“고요여! 지금 신하들과 백성들 중에 아무도 나의 명령을 거스르는 이가 없는 것은 그대가 사(士)로서 다섯 가지 형벌을 밝히고 다섯 가지 윤리[五倫]로 도와주면서, 나의 다스리는 일을 맡아 잘 처리해 주었기 때문이오, 형벌을 씀에 형벌이 없어지도록 하여 백성들을 바르고 곧은 길에 들어맞도록 한 것은 그대의 공이오, 더욱 힘쓰시오.”
고요가 말하였다.
“임금님의 덕에 하자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신하를 간편하게 대하시고 백성들을 너그럽게 다스렸으며, 죄는 자손들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시고 상은 후세에까지 뻗치게 하셨으며, 과실은 커도 용서하시고, 고의로 저지른 죄는 작아도 벌하셨으며, 의심스러운 죄는 가벼이 하시고, 의심스러운 공로는 중히 평가하셨으며,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지대 차라리 법도를 잃어 일에 실패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삶을 아끼시는 덕이 백성들의 마음에 까지 스며들어 관리들의 하는 일을 거스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순 임금은 우가 거듭 사양함에도 불구하고, 선양을 받을 것을 3번씩 간곡히 부탁을 하였고 결국 우가 예사(禮辭), 고사(固辭), 종사(終辭) 끝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순 임금 신하인 우는 토목치수업무의 최고책임자였으므로 요즈음의 국토건설부장관에 해당되고 고요는 수사 및 재판업무의 최고 책임자였으므로 요즈음의 법무부장관이자 대법원장에 해당된다. 순 임금이 우를 후계자로 지목하자 우는 사양하면서 오히려 고요가 덕이 높아 적임자라고 추천하고 있다.
반면 고요는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2가지 업무분장에 따른 인간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국토건설부장관은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거나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하여 치산 치수등 미래지향적이고 창조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반면에 법무부장관 내지 대법원장은 과거에 일어난 범죄 등 잘못에 관하여 시비를 가려서 엄정한 심판과 처벌을 하는 주로 현상유지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우가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성공적으로 국가의 치산치수업무를 수행하고도 그 공적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의 미덕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업무처리능력도 있고, 인품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우는 13년간 홍수현장에서 치산치수업무를 지휘하면서 3차례나 집 앞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르지 않을만큼 혼신의 힘을 쏟아 홍수를 막아냈다. 농경사회의 기반을 다졌다는 것이다.
법률가들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령에 과거의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시비를 가리는 업무에 종사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사고 작용이 고착되어 버리고, 미래지향적이거나 현실을 타파하는 기획적인 업무에는 서투르게 마련이다. 반면 행정가들은 현재의 불합리한 것들은 개선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인의 덕목은 이러한 행정가의 덕목이 더욱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왜 고요가 순 임금의 후계자로 발탁되지 못하고, 우가 후계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수긍이 갈 것이다. 우리 법률가중에 정치인을 꿈꾸거나 보다 미래지향적인 시대를 열어나가려는 분들은 행정가의 덕목을 꾸준히 연마해야 할 것이다. 고요는 형별을 시행함에 있어서 재판의 과오를 피하기 위하여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법언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동양의 형벌사상의 기본이 서양보다 결코 못 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고요는 공명정대하게 재판업무를 수행한 모범적인 법률가이며, 최고 권력자와 관계에 있어서도 압력에 굴하거나 사사로움을 보이지 않으리라는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맹자에 따르면 순 임금과 고요재판관의 업무수행에 관한 모의 재판사례가 있다.
맹자의 제자인 도응이 여쭈었다.
“순이 천자가 되었고, 고요가 재판관이 된 상황에서, 순 임금의 아버지인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겠습니까?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물론 법에 따라 고수를 체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체포하는 것까지만 내가 말할 수 있다.”도응이 여쭈었다.
“그렇다면 순 임금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체포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는단 말입니까?”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대체 순 임금이라고 해서 어떻게 살인범을 체포하여 구금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대저 벌을 받아야만 할 확실한 법적 근거가 있으니 임의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도응은 여쭈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순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요? 아버지가 사형에 처해지는 것을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어야 할까요?”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순은 본시 천자라는 권좌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권좌에서 물러나 몰래 아버지를 등에 업고 도망쳐나와, 머나먼 바닷가에 숨어 살며, 종신토록 아버지를 모시는 것을 흐뭇하게 생각하며, 그런 생활을 즐기면서 자기가 천자였다는 것도 잊어 버릴 것이다.”(도올. 맹자 사람의 길 하권769쪽에서 인용)
여기서 맹자는 충과 효가 충돌할 경우에 효가 우선 한다는 것을 천명하고, 왕이라도 국법을 어길 수 없 고 사사로이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공직을 버리면서까지 살인범인 어버이를 은닉하여 효를 다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섭공(葉公)과의 양을 훔친 아버지 사건에 유죄로 증언한 아들을 둘러싼 대화에서 “아비는 자식을 위해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를 위하여 숨겨 줍니다. 정직이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라고
이를 지지하고 있다. 우리 형법 제151조의 친족간의 범인은닉과 도피를 벌하지 않는 것, 형법 제155조의 친족간의 증거인멸을 벌하지 않는 것. 형사소송법 제148조의 친족의 범죄행위에 관한 증언거부권을 인정한 것도 여기서 유래하는 것이다.
위 사례는 효를 다하는 개인적인 실리와 국법을 어기지 않는 명분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서양에서 사랑을 위하여 왕위를 버렸다는 소식은 있었으나 효를 위하여 왕위를 버린다는 소식은 없었다. 순의 성품이 이러하다면 정녕 성인이구나! 법률가들은 이해충돌에서 이러한 삶의 지혜를 항상 밝혀 나가야 할 것이다.(2015.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