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각의 한층을 더 올라

예술부산 2021년 12월호(권두언)

법무법인 삼덕 대표변호사 김백영

송(宋)나라의 화가이기도 한 문인 황정견(1045~1105, 호 산곡山谷)은 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라고 했다. 고요한 곳에 앉아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향을 사르니 묘한 기운이 일어나 물이 흘러가고 꽃이 피네. 흔히들 차시(茶詩)로 회자되고 있으나 필자는 내면을 관조하는 시로 보고 싶다(자세한 것은 네이버, ‘김백영 다반향초’ 참조).

예술은 정신세계를 확장하고 삶을 장엄하게 해준다. 이러한 정신활동의 시작은 내면을 가꾸는 데에 있고, 바깥을 장엄하게 장식하는 데서 마무리 된다. 필자의 경우에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국내외를 여행하면서 여행지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을 즐겨하고 있다(네이버, ‘김백영 미술관기행’ 참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미국의 미술관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신생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미술관의 숫자나 컬렉션의 규모에 감탄을 하였다. 그 많은 미술관 중 사립미술관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업가들이나 그 상속인이 평생 수집한 컬렉션을 사회적 환원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는데 로스앤젤레스 말리부에 있는 폴게티 미술관(폴게티에 관한 영화, ‘세상의 모든 돈’ 참조), 뉴욕에 있는 구겐하임미술관(그밖에 베네치아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페기 구겐하임에 관하여는 영화 ‘폴락’ 참조), 휘트니 미술관, 노이에(Neue) 갤러리, 보스톤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국공립미술관에도 미술품을 기증한 수많은 기증자들을 위한 기증관(방실)을 만들어서 생전에 기증자가 걸었던 상황을 재현하여 미술관 속의 작은 미술관으로 수없이 꾸미고 있다. 이웃 일본을 둘러보아도 역시 기업이나 사업가가 수집한 컬렉션으로 미술관을 세워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도쿄의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 네즈(根津) 미술관, 브리지스톤 미술관, 솜포(損保) 재팬 도고 세이지 미술관,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오하라(大原) 미술관, 하코네(箱根) 폴라 미술관, 나리타(成田)의 DIC가와무라 미술관, 야스기(安来)의 아다치(足立) 미술관, 나고야(名古屋)의 야마자키마작 미술관, 나오시마(直島)의 지추(地中) 미술관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서양의 뛰어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반고흐의 <해바라기>를 소장한 솜포재팬 미술관, 모네의 <수련>을 소장한 지추 미술관과 국립서양미술관을 들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일찍이 탈아론(脫亞論)을 통하여 공업화를 하고, 이를 토대로 축적한 자본력으로 서구의 유명작가의 작품을 컬렉션 한 덕택이다.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도 조선사업가 마츠카타 코지로(松方 幸次郎, 1866~1950)가 인상파 화가들의 많은 작품 등을 수집한 컬렉션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것이다. 물론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오하라 미술관 역시 방직사업가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 孫三郎, 1880~1943)가 화가 고지마 토라지로(児島 虎次郎, 1881~1929)를 파리에 유학을 보내면서 그를 통하여 수집한 인상파 화가 등 작품으로 요절한 고지마를 기리면서 설립한 것이다. 기업가와 화가 간에 쌓인 우정이 아름다운 결실로 맺은 것이다. 이러한 미술관은 지역관광경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보면 일찍이 호암 이병철(李秉喆, 1910~1987)은 고미술을 전문적으로 컬렉션하여 호암 미술관을 세웠고, 삼성은 2004년 현대미술품 위주의 리움(Leeum) 미술관을 세웠다. 2020년도 개성상인 손창근 선생이 이 국보 제180호 <세한도>를 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다(네이버, ‘김백영 세한도’ 참조). 올해 국내의 문화예술계의 최고의 화제는 이건희 컬렉션의 사회 환원이라고 하겠다. 이건희(李健熙, 1942~2020) 전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 모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모네의 <수련> 등 국내외 컬렉션 23,000점을 상속인을 통하여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였다. 이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기업가들도 위대한 문화예술국가와 사회로 한층 더 나아가기 위하여 눈높이를 한 단계 더 높였으면 한다.

부산의 대표적인 아트기부자로 신옥진(1947~현재) 부산공간화랑 대표를 들 수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등에 상당한 작품을 기증하여 귀감이 되고 있다. 필자의 경우도 동아대학교 로스쿨 설립을 인연으로 수집한 미술품 몇 점을 환경미화에 쓰라고 기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 예술품에 대한 투자와 컬렉션, 나아가 사회적 한원을 위한 위대한 결심이 필요하다. 일반 대중들도 조그만 소품이라도 미술품을 구매하고 즐기는 문화가 필요하다. 몇 십억 원의 고급아파트에 살면서 격조 높은 미술품 1점 없는 공간에서 사는 삶이라면 얼마나 삭막할까?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독자들에게 당(唐)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 688~742)의 등관작루(登鸛雀樓)를 선사한다.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해는 서산에 지고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

황하는 바다에 흘러 가네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

천 리 바깥을 보고자 하려거든

更上一層樓(갱상일층루)

다시 누각의 한 층을 더 올라가야 하리